[오늘(10.9)의 독서 말씀] 내가 쌓은 공로인가, 먼저 받은 은총인가 : 갈라티아서 (3,7-14)
제임스
2026-10-0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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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공부한 만큼 성적을 받고, 직장에서는 일한 만큼 평가받기를 기대한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인정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신앙생활에까지 이어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나는 오랫동안 성당에 다녔고, 미사에도 빠지지 않았으며, 여러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도 나를 그만큼 인정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
어느새 신앙마저 내가 얼마나 많은 공로를 쌓았는가를 계산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생각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바오로는 아브라함을 예로 든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복을 받은 것은 율법의 모든 규정을 완벽하게 지켰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에 자신의 삶을 맡겼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혈통이나 신분이 아니라 믿음이다.
하느님께서는 특정한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복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학력과 경력, 직책과 재산을 먼저 살펴보곤 한다.
신앙생활에서도 누가 더 오래 성당에 다녔는가, 누가 더 중요한 직책을 맡았는가,
누가 더 많은 봉사를 했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보기 쉽다.
그러나 그런 경력이 신앙의 깊이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쌓은 실적에 대한 보수가 아니라,
먼저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기 때문이다.
바오로가 율법에 따른 행위보다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율법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여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는 데 있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하고 실수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더라도
모든 순간에 사랑을 실천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바오로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일깨우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족하고 죄를 짓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이셨다.
우리가 먼저 완전해져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선행이나 봉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의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다만 그 순서가 중요하다.
내가 선행을 많이 했으니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봉사를 하더라도 인정받기 위해 한다면 누군가 알아주지 않을 때 서운해진다.
그러나 받은 은총에 감사하여 봉사한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젊었을 때에는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중요했다.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가 삶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부모의 사랑, 스승의 가르침, 가족의 희생, 동료들의 도움,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기회가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것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사실은 내가 받은 것이었는가.
신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랫동안 성당에 다녔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세월을 통해
내가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했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했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 앞에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아직도 내가 쌓아 온 공로를 하느님 앞에 내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며 은근히 우월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반대로 부족하고 잘못한 것이 많다는 이유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믿음은 내가 완전하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부족한 나를 먼저 사랑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일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감사와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감사와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신앙은 내가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것을 드렸는가를 자랑하는 삶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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