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사이야서 독서 말씀을 묵상하며] 상처로 피어나는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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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오늘의 독서를 읽다 보면, 때로는 마음이 머무는 구절이 있다.
오늘도 그랬다. 이사야의 오래된 말씀이었지만,
읽는 순간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이 짧은 문장이 왜 그렇게 마음 깊이 내려앉는지,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한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우리는 보통 상처를 피하려 한다.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손해 보지 않기를 원하며,
가능하면 고통 없는 길을 선택하려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고통 속에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무슨 잘못이 있었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어쩌면 그것은 그 고통이 나와는 무관하다는
안도감을 얻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사야의 종은 그 모든 생각을 뒤집는다.
그는 아무 죄가 없었지만 고통을 당했고,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멸시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얼굴을 돌렸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의 고통을 그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종은 자신의 고통을 변명하지 않았다.
억울함을 설명하지 않았고,
자신을 드러내어 항변하지도 않았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말없이 그 길을 걸어갔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왜 그 고통을 피하지 않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멈추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그 말씀이 다시 들려온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의 고통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몫이었고, 결국은 우리의 몫이었다.
그 순간, 이 말씀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고,
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으며,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쉽게 지나쳐 버리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향해 서 있었다.
도망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로 나를 살려내고 있었다.
신앙은 때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설명할 수 없는 사랑 앞에서 그저 서 있는 것,
그리고 조금씩 그 사랑을 닮아가는 것.
돌아보면 우리의 삶 속에도 작은 십자가들이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오해,
말하지 못하는 억울함,
조용히 견뎌야 하는 시간들.
그때 우리는 그 고통을 피하려 애쓴다.
그러나 이사야의 종은 다른 길을 보여준다.
고통을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길.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이 말은 이미 이루어진 사건이면서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다.
누군가가 자기 몫을 넘어 다른 이를 위해 견뎌낼 때,
누군가가 상처 속에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을 때,
그 말씀은 오늘도 다시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 말씀 앞에서 조용히 머문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자리에 서 있는가.
상처를 외면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함께 짊어지려는 사람인가.
대답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그 사랑을 한 번이라도 느껴 본 사람이라면,
결국 그 길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
오늘도 나는 그 상처를 기억하며 조용히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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