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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창 야고보 신부님을 추모하며]

제임스
2026-02-24 07:16 12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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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충격이었던 한 사제

이문동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시절,
김수창 신부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 첫인상은 한마디로 “신선함”이었습니다.
권위로 다가오기보다, 바람처럼 스며드는 분이었습니다.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설날이었습니다.
사목회 회장단을 모시고 본당 어르신들의 집을 하나하나 직접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르신들께 세배를 드렸습니다.

그 장면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세배를 한다는 것.
우리는 늘 신부님께 인사드리는 데 익숙했지,
신부님이 먼저 허리를 숙이는 모습은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세배 한 번이
본당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목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낮아지는 것임을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회기동 시장의 감자탕집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사목위원들에게 그곳을 “아지트”로 삼으라고 권하셨습니다.
신자가 운영하는 집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성당은 미사 안에서만 만나는 곳이 아니다.”

신자들이 자주 만나 이야기 나누고,
밥을 먹고, 웃고, 고민을 나누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사목위원들이
주일학교 교사들의 밥값이나 술값을 대신 내주곤 했습니다.

신부님은 교사들을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친구들이 미래의 사목위원들입니다.”

그 한마디는 격려를 넘어
미래를 보는 눈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일도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 중 유능한 친구들에게
독일 유학을 가면 장학금 3만 마르크를 지원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1970년대 그 금액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훗날 자리가 잡히면
그 장학금을 다시 기부해 다른 이가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조건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장학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은총의 순환 구조였습니다.

받은 사람이 다시 내어 주고,
내어 준 사람이 또 다른 미래를 세우는 구조.

저 역시 독일 유학을 준비하다 미국으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그 제안 자체가 제게는 큰 격려였습니다.
“너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먼저 건네 주셨기 때문입니다.

1993년 꾸르실료 교육에 갔을 때,
이문동 시절의 사목위원들과 함께
지도신부님으로 봉사하시는 모습을 뵈었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신부님은 사람을 남기시는 분이구나.
제도를 남기는 분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분이구나.

평신도들이 성찬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신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는 성직자의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이 함께 움직이는 공동체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의 사목은 언제나
권위가 아니라 참여,
명령이 아니라 초대였습니다.

이제 신부님은 우리 곁을 떠나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남기신 것은
건물도 아니고, 행사도 아닙니다.

사람들입니다.
용기를 얻은 사람들,
사랑을 배운 사람들,
자신도 누군가를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을 품은 사람들.

그것이 진짜 사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신부님은 아마도
수많은 작은 이들 안에서
주님을 만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우리 안에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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