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 조그만 공소에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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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순절이 되면 우리는 흔히 이렇게 다짐합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 담배를 끊겠다,
낚시를 멈추겠다, 골프를 자제하겠다. 분명 가치 있는 결심입니다.
절제는 필요하고, 자기 통제는 신앙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 결심이 하느님께 어떤 의미가 있을까?
술을 끊는 것도, 담배를 멈추는 것도, 취미를 줄이는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건강을 지키고, 시간을 절약하고, 삶을 정돈하는 일입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순절이 단지 ‘나를 단련하는 기간’으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아직 복음이 말하는 단식의 깊이에 이르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식할 때 얼굴을 씻고 기름을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단식이 자기 과시가 되어서는 안 되듯이,
자기 만족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는 뜻처럼 들립니다.
비움은 단지 나를 위한 절제가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열리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내가 줄인 것이 나에게만 머물지 않고,
이웃에게 흘러갈 때 비로소 그것은 하느님을 향한 행위가 됩니다.
미국의 한 작은 공소에서 경험하였던 일이 오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사순절이 되자 신자들이 이렇게 내걸었습니다.
세탁소에서는 사순절 동안 신자들의 세탁비를 절반으로 깎아 주겠다고 하고,
미장원에서는 한 번 무료 봉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식당에서는 50퍼센트를 할인하고,
부동산에서는 중개 수수료를 낮추고,
심부름센터에서는 한 번 공짜로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나는 이것을 끊겠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이것을 내어놓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절제가 나 자신을 위한 결핍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나눔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포기한 시간과 수고,
내가 감수한 손해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사순절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 같았습니다.
단식이 내 안에서 끝나지 않고,
이웃을 통해 하느님께 올라가는 길이 되는 것.
자선이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일부를 내어주는 태도가 되는 것.
기도가 나 혼자만의 경건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
결국 사순절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비운 자리로 누구를 살릴 것인가.
술을 끊는 것이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담배를 멈추고 취미를 줄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절제의 열매가 이웃에게 흘러가도록 한다면,
그때 비로소 그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가 됩니다.
모든 실천이 이웃을 통과하여 하느님께 닿을 때,
사순절은 개인 수양의 기간을 넘어 사랑의 계절이 됩니다.
그 작은 공소에서 보았던 모습처럼,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조용히 희생하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사순절에 걸어가야 할 길을 배웁니다.
나를 줄여 이웃을 살리고,
이웃을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길.
아마도 그것이 이번 사순절에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자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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