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 말씀] 솔로몬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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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지혜의 왕으로 불렸던 솔로몬의 인생은 화려하였다.
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부와 장수 대신 분별력을 구했고,
그 선택은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성전을 세우고, 나라를 안정시키며,
주변 민족들까지 감탄하게 만들었던 그의 통치는 절정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마지막을 찬란함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솔로몬이 늙자,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려놓았다.”
이 문장은 조용하지만 무겁다.
여기서 문제는 단지 우상을 섬겼다는 사실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의 마음이 한결같지 못하였다”는 데 있다.
젊은 날의 솔로몬은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었던 사람이었다.
노년에 이르러 그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중심을 양보하기 시작했다.
외교적 결혼은 정치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여러 민족의 공주들을 아내로 맞이함으로써
국제적 평화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배려는 점차 타협으로 변질되었다.
아스타롯, 밀콤, 크모스, 몰록을 위한 산당이
예루살렘 동쪽 산 위에 세워졌다.
그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었다.
성전이 있는 도성의 맞은편에 또 다른 제단이 세워진다는 것은,
그의 마음 안에 두 개의 중심이 생겼다는 상징이었다.
신앙의 붕괴는 급격하지 않다.
그것은 아주 작은 기울어짐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배려였고,
다음에는 “상대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뿐”이라는 합리화였으며,
마침내는 “산당을 세우는 일”이 되었다.
지혜는 있었지만, 지혜가 곧 충실함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지키려다가 중심을 잃기도 한다.
성취 이후의 안도감, 안정 이후의 느슨함, 성공 이후의 자만은
마음을 서서히 분산시킨다.
하느님은 솔로몬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셨다.
다른 신들을 따르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하셨다.
그럼에도 그는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나라는 갈라질 것이라는 선언이 내려진다.
그러나 그 심판 속에도 자비는 남아 있다.
“네 아버지 다윗을 보아서 네 생전에는 하지 않겠다.”
과거의 신실함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
솔로몬의 이야기는 위대한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마음의 분열에 대한 경고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이지만 동시에 타협도 쌓인다.
처음의 순수함이 점차 현실적 계산으로 대체될 때,
우리는 성전을 지은 손으로 산당을 세울 수 있다.
오늘 우리의 우상은 고대의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명예일 수도 있고, 성과일 수도 있고,
체면이나 관계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필요한 도구였지만
어느 순간 중심을 차지해 버리는 것들이다.
신앙은 겉으로 무너지기 전에 먼저 마음에서 나뉜다.
솔로몬의 노년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나의 마음은 아직 한결같은가.
발효가 잘 관리되면 깊은 향으로 숙성되지만,
관리하지 않으면 산패가 된다. 인생도 그렇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돌보지 않으면 서서히 변질된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은 왕으로 시작했지만,
산당을 세운 왕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기억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 여백이다.
심판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하느님의 언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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