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 말씀] 구름이 가득 찼을 때(열왕기 8장 1-13절)
본문
솔로몬은 준비된 사람이었다.
왕으로서 권력과 기획 능력,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그는 하느님을 위해 집을 짓고 싶었고, 그 집이 웅장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계약 궤가 시온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지는 날,
이스라엘의 원로와 지파의 우두머리들이 모두 모였고,
제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풍성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의 장면이다.
신앙의 중심이 자리를 잡고, 공동체는 하나로 모였으며,
왕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듯 보인다.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들이 있다.
오랫동안 기도해 온 일이 이루어졌을 때,
수고가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났을 때,
“이제야 제대로 하느님께 무언가를 드린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말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장면은 그 다음에 온다.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운다.
너무 가득 차서, 사제들은 더 이상 서서 일할 수조차 없다.
인간의 준비가 끝났을 때, 인간의 행위가 멈추는 순간에,
주님의 영광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 장면은 우리 신앙의 중요한 경계를 짚어 준다.
우리는 종종 “잘 준비하면, 열심히 하면, 정성을 다하면”
하느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준비와 정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에도,
더 이상의 하느님의 보살핌이 필요 없을 듯 생각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오신다.
구름 속에서, 시야를 가리며,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잘 해내는 것’보다
‘그분 앞에 서 있는 것’이 먼저이기에
사람을 잠시 침묵하게 하신다.
솔로몬의 고백은 그래서 인상 깊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명확한 빛으로만 오시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멈춤 속에서,
우리가 세워 놓은 질서와 계획이 잠시 흐려지는 자리에서
그분은 계신다.
그리고 솔로몬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제가 당신을 위하여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한 고백처럼 들린다.
집을 지은 것은 인간이지만,
그 안에 머무실 지를 결정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공간일 뿐,
그 공간을 채우시는 분은 언제나 주님이시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는 하느님을 모실 ‘집’을 짓고 있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가둘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내 신앙은 구름이 가득 찰 여지를 남겨 두고 있는가,
아니면 모든 것을 설명 가능하게 정리해 두었는가.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찰 때,
사제들이 서서 일할 수 없었던 것처럼,
참된 신앙의 순간에는
우리가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머무를 수밖에 없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 멈춤 속에서,
하느님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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