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문] 생명을 나누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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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쯤 되었을까. 백혈병을 앓던 미 공군사관생도 김성덕(브라이언 성덕 바우만) 군이 조혈모세포 기증자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도 전해졌고, 많은 사람이 유전자 적합성 검사를 받았다. 나 역시 혈액원을 찾아 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결과는 불일치였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초등학생 아이가 나와 완전히 같은(100%) 유전자 적합성을 지니고 있어, 내가 기증하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증을 승낙하자 생활 전반에 주의가 요구되었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으며, 이식일이 가까워질수록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교통사고까지 조심해 달라는 당부를 들었다. 마치 내가 임신이라도 한 사람처럼 보호의 대상이 된 느낌이었다. 조혈모 세포를 기증하고 난 뒤 내 자신이 피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더디게 되는 것에 대비하여 한달 전에 피를 450 cc 뽑아서 보관하였다가 이식 후 나에게 다시 피를 수혈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기증을 위해 2박3일간 입원하게 되었다. 서약서를 쓰며 뜻밖의 문장을 마주했다. 전신마취 후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에 동의하느냐는 내용이었다. 순간 망설임이 스쳤다. 내 치료도 아니고, 타인을 돕는 일인데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벌써 환아는 면역력을 거의 제로로 만든 채 무균실에서 나의 조혈모 세포 이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포기하면 그 아이의 생명도 위태로워질 상황이었다. 아내는 이제 와서 물러설 수 있겠느냐며 조용히 등을 떠밀었다.
골반에서 골수 1000cc를 채취하여 제공했고, 이식은 다행히 원만히 이루어졌다. 그 아이의 혈액형이 이제 나와 같은 B형으로 바뀐다는 말을 듣고는 생명의 신비 앞에 잠시 말을 잃었다. 회복 후 강의실로 돌아가 보강하려 했더니, 학생들은 박수로 맞아 주며 쉬어도 괜찮다고 했다. 이식 과정을 들은 학생 중 상당수가 헌혈과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삶을 전하는 시간이었기에 더욱 감사했다.
요즘은 입원이나 전신마취 없이 말초혈관에서 성분 헌혈 방식으로 이식이 가능해져, 당시와 같은 부담은 크게 줄었다. 이식 후 일주일이 지나 열린 감사의 밤에서는 여러 수혜자 가족과 기증자가 한 줄로 서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누가 누구에게 기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부모는 여러 기증자들을 만날 때마다 끌어안고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고, 어떤 가족은 큰 절로 고마움을 전했다. 얼떨결에 인사를 받으며 그 장면 앞에서 나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백혈병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병이다. 내가 만났던 환우들 가운데는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도 있었고, 20년째 군 복무 중인 부사관도 있었으며, 젊은 대학생과 유명 배우도 있었다. 북한에서 치료를 위해 탈북한 고위층의 딸도 있었다. 병은 차별하지 않는다.
조혈모세포 유전자 적합성 데이터베이스는 과거에 비해 많이 확보되었고, 의학적 기술도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넘기 어려운 벽이 있다. 바로 경제적 어려움이다. 치료의 길은 열려 있지만,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힘이 부족한 이들이 있다. 지금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이웃의 손길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참조)라고 말씀하셨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복음의 자리를 향한다. 이 글을 읽는 우리의 작은 마음과 나눔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내일이 될 수 있다. 생명을 나누는 이 길에, 더 많은 이가 함께해 주기를 조심스럽게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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