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복음 말씀] 단식, 발효, 그리고 ‘새 부대’의 의미
제임스
2026-01-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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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던 장면은, 식품인의 눈으로 보면 ‘먹지 않음’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려는 방식의 문제로 다가온다.
단식은 몸을 비우는 행위이기 이전에, 정해진 규칙 안에서 삶의 리듬을 지키려는 절제의 기술이다.
이는 이미 안정화된 보존의 방식에 가깝다. 변화보다는 지속을 선택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단식은 몸을 비우는 행위이기 이전에, 정해진 규칙 안에서 삶의 리듬을 지키려는 절제의 기술이다.
이는 이미 안정화된 보존의 방식에 가깝다. 변화보다는 지속을 선택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전혀 다른 방향의 비유를 꺼내신다.
혼인 잔치, 새 천, 새 포도주, 새 가죽 부대.
이 이미지들은 모두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가 단순한 규칙의 수정이 아니라, 성격 자체가 다른 전환임을 말해 준다.
혼인 잔치, 새 천, 새 포도주, 새 가죽 부대.
이 이미지들은 모두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가 단순한 규칙의 수정이 아니라, 성격 자체가 다른 전환임을 말해 준다.
혼인 잔치의 비유는 특히 인상적이다. 혼인잔치는 섭취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에너지가 흐르고, 관계가 형성되며, 생명이 확장되는 시간이다.
발효가 한창 진행 중인 식품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이때 온도를 낮추거나 공정을 멈추면 발효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지금은 절제의 시간이 아니라, 생명이 살아 움직이도록 허락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이 시간성과 맥락을 정확히 짚은 표현으로 읽힌다.
새 천을 헌 옷에 대고 기우지 않는다는 비유는 물성의 언어로 매우 명확하다.
새 천은 아직 수축과 변형의 가능성이 남아 있고, 헌 옷은 이미 구조가 굳어진 상태다.
이 둘을 억지로 결합하면 장력의 불균형이 생기고, 결국 더 큰 찢어짐으로 이어진다.
이는 새로운 원료나 기술을 기존의 공정에 아무 조정 없이 끼워 넣을 때 발생하는 문제와 닮아 있다.
문제는 새로움 그 자체가 아니라, 맞지 않는 결합에 있다.
새 포도주와 헌 가죽 부대의 비유는 식품인에게 거의 교과서적인 장면이다.
새 포도주는 아직 발효 중이며,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가스가 생성되고 압력이 변화한다.
이미 여러 차례 사용되어 탄성을 잃은 헌 가죽 부대는 이 변화를 견딜 수 없다.
그 결과는 파열이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발효의 기본 원리에 대한 정확한 묘사다.
활성화된 생명 시스템은 그에 맞는 환경과 용기를 요구한다.
이 대목에서 ‘새 부대’는 단순히 새로운 형식을 뜻하지 않는다.
색다른 시각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내용을 담아내는 구조와 태도의 전환이다.
새로운 생명력,
새로운 가치,
새로운 방식은 기존의 틀 속에 그대로 담길 수 없다.
발효가 시작되었는데도 여전히 저장의 논리로 다루려 한다면, 그 생명력은 위협이 되거나 오해받기 쉽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신앙의 영역을 넘어, 생명 전반에 적용되는 통찰로 읽힌다.
생명은 언제나 움직이고 팽창하며 변화한다.
그래서 생명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그 변화를 견딜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어야 한다.
다른 시각의 눈으로 이 복음을 바라보면 이렇게 들린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규칙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발효가 시작된 상태이며,
그 발효를 온전히 품어낼 새 부대가 필요하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이 통찰은 음식에서도, 신앙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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