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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말씀] 몸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순간

제임스
2026-01-16 15:58 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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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르코 복음 2장은 기적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지붕을 뜯고 중풍 병자를 달아 내린 네 사람, 죄의 용서, 그리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명령.
그러나 식품인에게는 몸의 회복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매우 깊은 질문을 던진다.

 

중풍 병자는 들것에 실려 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다.
그의 몸은 대사가 멈춰 있는 상태. 먹는 행위는 단순히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이 아니다.
입안에서 잘게 부수고, 삼키고, 소화하고, 흡수하고, 에너지로 전환하는 전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중풍 병자의 몸은 그 흐름이 끊어져 있다.
몸이 스스로를 유지하는 능력, 자기 조절 기능을 잃은 상태다.

그래서 그는 걷지 못하는 사람이전에, 스스로 먹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
들것은 단순한 운반 도구가 아니라,

그가 삶의 흐름에서 이탈했음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네 사람이 지붕을 뜯는다.
몸의 회복은 결코 개인 혼자의 의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대로 된 음식은 농부와 가공자와 조리자와 함께 완성된다.
아픈 몸 역시 관계 속에서 회복의 조건이 마련된다.

이 네 사람은 병자의 근육을 대신해 움직이고, 그의 의지를 대신해 결단한다.
그들의 행동은 말한다.
이 몸은 아직 포기되지 않았다.”

 

예수님의 첫마디는 뜻밖이다.
일어나라가 아니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왜 먼저 죄의 용서인가?

몸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스트레스, 죄책감, 두려움, 사회적 낙인은
호르몬과 신경계를 통해 실제로 대사와 면역을 억제한다.
몸이 굳어 있는 상태는 때로 근육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가 눌려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말은,
이 병자의 몸을 묶고 있던 가장 깊은 긴장을 먼저 풀어 준다.
회복은 언제나 안쪽에서 바깥으로 시작된다.

 

이제 예수님은 말한다. 일어나 걸어가라.

그는 단순히 걷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들것은 그를 실어 나르던 도구였지만,
이제는 그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는 회복의 완성이다.
몸이 다시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먹고, 소화하고, 움직이고, 일하고, 돌아가는 삶.
들것에서 내려온 그는 다시 식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율법 학자들은 묻는다.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되묻는다.
말하는 것과, 일어나게 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쉬우냐?

식품인의 눈으로 보면, 말은 언제나 쉽다.
그러나 몸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좋은 말, 좋은 이론, 좋은 규정만으로는 몸은 회복되지 않는다.
몸은 실제로 반응해야 하고,
대사는 다시 돌아가야 하며,
삶은 다시 흘러야 한다.

 

이 기적은 단순히 걷게 된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몸이 다시 제 역할을 회복한 사건이다.

식품인의 눈에는 구원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먹고, 움직이고, 돌아갈 수 있게 되는 상태.

예수님은 중풍 병자를 들것 위에서 내려 식탁으로 돌려보내셨다.
그 순간, 사람들은 말한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몸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언제나 새로운 기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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