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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독서 말씀] “우리에게도 임금을 세워 주십시오”라는 요구

제임스
2026-01-15 20:21 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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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 상권 8장은 정치 제도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이 장을 들여다보면, 이 본문은 권력의 탄생이 식탁과 밭, 그리고 부엌을 어떻게 바꾸는가
대한 매우 구체적인 경고처럼 다가온다
.

이스라엘 백성은 말한다.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세워 주십시오.”
그들의 요구는 불안에서 비롯되었다. 지도자는 늙었고, 후계는 믿음직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안정 장치가 필요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은 감정이다.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질서보다, 눈에 보이는 시스템을 더 신뢰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주님의 시선은 달랐다.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한 것이다.”
이 말은 종교적 충성의 문제를 넘어, 삶의 공급 구조를 어디에 맡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들린다.

 

사무엘은 임금이 생기면 무엇이 달라질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말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식량 생산의 현장이 있다.

임금은 백성의 가장 좋은 밭과 포도원, 올리브 밭을 가져간다.
곡식과 포도밭에서 십일조를 거두어 권력의 유지에 사용한다.
이는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다.
식량 생산이 공동체의 손에서 중앙 권력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밭은 더 이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공간이 아니라,

체제를 유지하는 자원이 된다.

곡식은 먹거리이기 전에 재정이 되고,

포도주는 축제의 상징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된다.

오늘날의 식품 시스템에서도 생산자는 점점 구조의 말단으로 밀려나고,

식량은 관계가 아니라 숫자로 유통된다.

사무엘의 경고는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놀라울 만큼 현재형이다.

 

임금은 딸들을 데려다가 향 제조사와 요리사, 제빵 기술자로 삼는다.

이 말은 단순한 직업 동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부엌과 가공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는 문장이다.

원래 향과 음식은 가정과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 전승되던 기술이었다.
누군가의 손맛, 누군가의 경험, 누군가의 기다림 속에서 축적되던 지식이다.

그러나 권력이 개입하는 순간,

이 기술은 생활의 지혜에서 관리 가능한 기술로 전환된다.

식품 가공이 체계화되고 표준화될수록 효율은 높아지지만,

동시에 삶의 리듬은 사라진다. 사무엘은 이미 오래전에 이 위험을 보고 있었다.

 

임금은 사람뿐 아니라, 나귀와 양 떼까지 동원한다.
결국 백성은 먹여 살리는 주체에서 체제를 유지하는 자원으로 바뀐다.

사람이 시스템을 먹이는 구조가 된다.

하느님이 임금이던 시절, 이스라엘의 식탁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다.
비와 햇빛, 계절과 안식년, 희년의 질서 속에서
사람은 땅의 주인이 아니라 맡겨진 관리인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임금을 선택하는 순간,
식량은 은총이 아니라 통제 대상이 되고,
노동은 나눔이 아니라 동원이 된다.


경고를 듣고도, 백성은 말한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불확실한 자유보다, 확실한 통제를 택하는 선택.
보이지 않는 신뢰보다, 눈에 보이는 권력을 택하는 선택.

식품을 연구하다 보면 조금 느려도 안전한 방식보다,
조금 불안해도 즉각적인 결과를 주는 방식을 택하는 순간들이 있다.

 

누가 너의 식탁을 다스리는가?”

하느님인가,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 낸 임금인가.
관계와 리듬인가, 아니면 효율과 통제인가.

오늘의 말씀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밥과 빵, 향과 포도주가 누구의 손에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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