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물에 잠기신 하느님의 아들
-
- 첨부파일 : 267.png (584.6K) - 다운로드
본문
— 식품인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세례 —
마태오 복음에서 전해지는 예수님의 세례 장면은 언제 읽어도 낯설다.
죄 없으신 분이 왜 회개의 세례를 받으러 오셨을까? 하는 질문은,
신앙 안에서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식품을 연구해 온 사람의 눈으로 이 장면을 다시 바라보면,
이 사건은 ‘정결 의식’이나 ‘권위의 승인’이라기보다
하나의 공정에 기꺼이 참여하신 선택처럼 다가온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요르단 강까지 일부러 길을 나서신다.
목적은 분명하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함이다.
요한은 당황한다. 자신이 오히려 세례를 받아야 할 처지라고 말린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라”고 말씀하신다.
식품공정에서 보면, 이 말은 결과를 앞당기지 말라는 뜻과도 같다.
아무리 최종 제품이 완성되어 있다 하더라도,
거쳐야 할 과정은 생략될 수 없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식품의 세계에서는 완성도 높은 원료일수록 공정을 더 충실히 따른다.
이미 안전하다고 해서 세척을 생략하지 않고,
이미 균일하다고 해서 혼합을 건너뛰지 않는다.
공정은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절차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세례는 바로 그 자리로 내려오신 사건처럼 보인다.
위에서 명령하지 않고, 아래로 내려와 같은 물에 잠기신다.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한다.”
이 말은 결과의 의로움이 아니라 과정의 의로움을 말한다.
결과가 아무리 좋아 보여도, 과정이 정직하지 않으면
그 식품은 오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식품인은 잘 안다.
공정 기록이 없는 제품은 신뢰를 얻지 못하고,
검증을 거치지 않은 안전은 안전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시며, 그 출발선에서부터 공정을 택하신다.
세례를 받으신 뒤, 예수님께서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린다.
식품공정의 언어로 말하자면, 조건이 충족된 순간이다.
모든 단계가 제자리에 놓였을 때, 비로소 다음 반응이 일어난다.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오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린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 선언은 세례 이후에 주어진다.
신분이 먼저 확인되고 공정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공정에 참여한 후에 정체성이 공적으로 선포된다.
이는 식품인의 마음을 오래 붙든다.
우리는 종종 결과로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하느님은 과정을 통해 사람을 드러내신다.
물에 잠기는 겸손, 줄을 서는 기다림,
동일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순종이 있은 뒤에야 하늘은 열린다.
예수님의 세례는 세상을 향한 첫 발걸음이자,
하느님 나라의 공정 선언처럼 보인다.
이 나라는 위에서 내려와 군림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와 함께 잠기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식품을 다루는 사람에게 이것은 익숙한 진리다.
좋은 음식은 늘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흙에서 자라고, 물에 씻기고, 불과 시간을 견디며 비로소 사람을 살리는 음식이 된다.
요르단 강에 잠기신 예수님의 모습은 그래서 더없이 인간적이다.
그리고 그 인간적인 선택 위에, 하늘은 열린다.
식품인의 눈으로 볼 때, 이 장면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신뢰는 선언으로 얻어지지 않고, 공정을 통과한 삶 위에 주어진다고.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