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서 5장을 쓰면서] 삶을 조리하고 빛으로 숙성시키는 법
본문
— 에페소서 5장을 식품인의 눈으로 읽다 —
에페소서 5장을 읽다 보면, 이 장이 단순한 도덕 교훈이나 윤리 지침을 넘어 하나의 삶의 조리법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삶의 재료로 삼아야 하는지,
어떤 것은 아예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때 비로소 사람의 삶이 깊이를 얻는지를 차분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을 연구해 온 사람의 눈으로 이 장을 다시 읽으면,
바오로 사도의 언어는 놀라울 만큼 가공 공정과 품질 관리의 언어로 다가온다.
그는 먼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이 문장은 어떤 명령이라기보다 선언에 가깝다.
식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 이전에 원료의 정체성이다.
어떤 원료인가에 따라 가공의 가능성과 한계가 이미 정해진다.
바오로는 인간에게 먼저 그것을 상기시킨다.
너희는 이미 사랑받는 존재이며, 그 정체성 위에서 삶은 시작된다고 말이다.
불량한 원료를 아무리 정교한 기술로 다루어도 좋은 식품이 나올 수 없듯,
자기 정체성을 잃은 삶은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쉽게 무너진다.
이어지는 경고들은 마치 위생 관리 지침처럼 들린다.
음행과 더러움, 탐욕을 입에 담지도 말라고 하는 그의 표현은,
사후 수습이 아니라 사전 차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식품공정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눈에 띄는 대형 사고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량 오염이다.
아주 작은 오염 하나가 전체 배치를 폐기하게 만든다.
바오로가 지적하는 삶의 오염 역시 그렇다.
처음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방치되면 삶 전체를 변질시킨다.
그래서 그는 절제하라고 말하지 않고, 애초에 들이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또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을 깨달으라고 권한다.
식품 가공에서 공정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목적 품질이 분명해야 한다.
온도와 시간, 조성비는 모두 그 목표를 향해 조정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면,
그 삶은 방향을 잃은 공정이 된다.
에페소서 5장은 삶의 속도보다 방향을 먼저 점검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이 구절은 식품인의 마음에 특히 깊게 남는다.
술은 발효의 산물이다.
그러나 바오로가 문제 삼는 것은 발효 그 자체가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취함이다.
발효는 조건이 맞을 때 비로소 향과 깊이를 만들어낸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과하면 숙성이 아니라 변패가 된다.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말은, 무작위적인 자극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질서 있는 내적 발효를 허용하라는 요청처럼 들린다.
삶에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삶을 빛 가운데서 살아가라고 말한다.
식품산업에서 빛은 투명성이다.
원료를 숨기지 않고, 공정을 감추지 않으며,
문제가 생기면 드러내는 태도다.
빛 가운데서 견디지 못하는 것은 이미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바오로의 말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감출 것이 없는 삶, 설명할 수 있는 선택, 검증 가능한 태도.
그것이 빛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에페소서 5장 후반부에 등장하는 부부 관계에 대한 권고 역시
지배와 복종의 언어로 읽기보다, 상호 의존적 시스템의 언어로 읽을 수 있다.
식품공정에서 어느 하나의 요소도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열과 수분, 미생물과 시간은 서로를 억누르지 않고 조율한다.
바오로가 말하는 사랑과 순종 역시 우열이 아니라 책임의 균형을 가리킨다.
사랑은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고, 신뢰는 관계를 유지하는 힘이 된다.
이제 에페소서 5장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볼 수 있겠다.
지금 내 삶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사랑받는 자녀’라는 원래의 정체성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새 다른 기준으로 나 자신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하루의 공정에는 보이지 않는 오염이 스며들어 있지는 않은지,
처음에는 사소해 보였지만 결국 마음과 관계를 흐리게 만드는 습관을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살아가고 있는가.
바쁘게 움직이고는 있지만, 그 방향이 생명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소음 속을 맴돌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 삶은 천천히 숙성되고 있는가,
아니면 통제되지 않은 자극에 취해 변패의 길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나는 빛 가운데 서 있는가.
감추고 싶은 선택, 설명하기 어려운 말과 행동을 품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내 삶은 누군가 앞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투명함을 지니고 있는지 묵상해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나의 삶은 누군가에게 어떤 음식이 되고 있는가.
힘이 되어 주는 양식인가, 아니면 부담이 되는 음식인가.
에페소서 5장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살리는 삶으로 익어 가고 있는가.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