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본문
― 지혜 13,5 / 루카 17,30 ―
가을 하늘 아래 서서 구름의 빛깔을 바라보면, 문득 마음속에서 작은 감탄이 새어 나온다.
“참, 아름답다.”
지혜서는 우리에게 말한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지혜 13,5)
우리는 특별한 신앙 지식이 없어도, 거창한 논리를 세우지 않아도,
그저 자연을 바라보는 눈만 열려 있어도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산의 곡선, 나무의 숨결, 바다의 리듬—그 모든 것이
“나는 스스로 있는 이다”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다.
그러나 아름다움만 바라본다고
그 창조자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루카 복음은 그분의 진심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루카 17,30)
자연의 아름다움이 창조주를 알려 주었다면,
이 말씀은 창조주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준다.
사랑은 결국 내어줌이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길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임을 일깨운다.
우리는 종종 삶을 꽉 움켜쥔다.
재산을, 명예를, 건강을, 그리고 심지어 관계까지도
내가 붙들고 있어야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손을 꽉 쥘수록 마음은 더 불안해진다.
사라질까봐 걱정되고, 빼앗길까봐 조급해지고,
결국 그 불안 때문에 삶의 기쁨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예수님의 역설적인 말씀은
그런 우리에게 건네는 부드러운 초대다.
“놓아라. 그래야 산다.”
자연의 순환을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이 얼마나 진실한지 알 수 있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기에 봄이 오면 새 순을 틔울 수 있고,
강이 물길을 내어주기에 바다는 그 넉넉함을 유지한다.
자연은 ‘지키려 애쓰지 않기에’ 오히려 더 크고 아름답다.
피조물 안에서 창조주를 보고,
그분의 말씀 안에서 삶의 질서를 배울 때,
우리는 비로소 ‘잃음 속에서 얻는 생명’을 경험하게 된다.
그 생명은 세상이 주는 안전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대는 평화에서 비롯되는 생명이다.
오늘 하루,
무엇 하나만이라도 조금 내려놓아 보자.
조급함 혹은 두려움, 완벽하려는 욕심,
혹은 오래된 상처 하나라도.
그 작은 내려놓음 속에서
우리는 창조주께서 약속하신 참된 생명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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