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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10.14) 독서 말씀] 내 삶에는 어떤 열매가 맺히고 있는가 : 갈라티아서 (5,18-25)

제임스
2026-10-16 09:57 2 0

본문

  맛있는 과일을 많이 수확하려면 무엇보다 건강한 나무가 우선이다.

여기에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야 한다. 비료를 주고, 꽃과 열매를 솎아 내며,
잎을 정리하고, 잡초와 병해충을 관리해야 한다.
열매를 새들이 쪼아 먹지 못하도록 봉지를 씌우기도 한다.
이처럼 정성을 다해 가꾸지 않으면 기대하는 만큼 좋은 열매를 얻기 어렵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생을 마무리하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볼 때,
결국 남는 질문은 내가 어떤 나무로 자랐으며 어떤 열매를 남겼는가 하는 것일 테다.
다만 식물은 아무리 똑같은 방법으로 재배하더라도 매년 같은 수확을 보장할 수는 없다.
햇볕과 강수량, 병해충의 발생 등 자연환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료를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매년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반드시 좋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바른 가르침과 사랑을 받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은 그만큼 커질 것이다.

나이가 들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오늘의 내가 만들어지기까지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모님의 사랑,
스승의 가르침, 

가족의 희생, 

동료들의 도움,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기회가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것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사실은 내가 받은 것이었던가.

산에 나무를 심을 때는 처음에 촘촘하게 심었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생장이 좋은 나무를 남기고 간벌을 한다.
그런데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도 있다.
자손이 가난해지면 선산의 나무까지 팔아 생계를 잇지만,
줄기가 굽어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는 남겨져 오히려 선산을 지키게 된다는 뜻이다.
쓸모없다고 여겼던 것이 훗날 제구실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느님께서도 우리 삶의 어느 한 부분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바라보실 것이다.
'어려서 고생은 금 주고도 못 산다'는 속담처럼,
젊은 시절의 고난이 훗날 삶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삶이란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기에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아 본 적도 없다. 

그러나 부모님을 닮아 착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남을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비난받을 만한 일은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나 혼자 힘으로 성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나무로 태어났다고 자신할 수도 없고, 

좋은 열매를 맺도록 특별한 보살핌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내 삶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부모님과 가족이 있었다. 

평생 법대로, 아니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바르게 살아오신 부모님의 모습은 

내 삶의 기준이 되었다.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온 가족들도 나를 지탱해 준 힘이었다. 

그리고 철이 든 뒤 만나 평생의 동반자이자 분신처럼 살아온 아내가 

이제는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은인이다.


  건강한 나무와 좋은 열매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적절한 햇빛과 물, 양분이 필요하고 오랜 성장과 성숙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루 기도했다고 갑자기 인내심이 깊어지거나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매일의 작은 선택과 실천이 쌓이면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 간다. 

갈라티아서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도 그러할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특별한 순간에 보여 주는 위대한 행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에서 반복되는 작은 선택 속에서 자라난다. 

화가 날 때 한 번 더 참는 것,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시기하기보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사랑과 기쁨, 

평화와 인내, 

호의와 선의, 

성실과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어 가는 것이 아닐까.

성령의 열매는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따뜻해졌는지,
내가 머물렀던 자리에 얼마나 많은 평화와 사랑이 남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보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 시기심이 생기고,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화가 나기도 한다.
공동체에서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다 보면 작은 의견 차이가 갈등과 분열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도 어느새 경쟁과 자존심이 앞서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러한 모습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건강한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자랑하지 않는다. 

다만 그 열매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기쁨과 생명을 나누어 준다. 


우리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의 마지막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자리마다 얼마나 많은 사랑과 평화의 열매를 남겼는가 하는 것일 테다.

  나는 나름의 어려운 세월을 버티고 견디며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잘한 일도 있겠지만,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족한 모습을 보인 일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결혼 이후에는 나만의 삶이 아닌, 아내와 함께 둘이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아왔다.
내 삶을 돌아볼 때 나 혼자만의 노력과 성취로 평가하기보다 

아내와 함께 일구어 온 삶으로 바라보고 싶다.
하느님께서도 우리 부부의 삶을 그렇게 알아주시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 삶의 열매를 내 기준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그리고 삶의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 내놓을 열매가 화려하거나 풍성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위로가 되고,
갈등을 만들기보다 화합을 이루며, 

나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서로가 나누려 애쓴 흔적이 남아 있기를 우리 부부는 바란다.

아직 내 삶의 나무에는 열매가 자라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나온 삶의 열매를 돌아보며 아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은 날들 동안 조금이라도 더 좋은 열매를 맺도록 나 자신을 가꾸어야겠다. 

그리고 그 열매가 나 혼자만의 결실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맺어 가는 열매이기를,
하느님 앞에 우리 부부가 함께 내놓을 수 있는 열매이기를 소망하며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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