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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10.12)의 독서 말씀] 자유를 얻었는데도 다시 멍에를 메려는 사람들 : 갈라티아서 (4,22-5,1)

제임스
2026-10-11 18:04 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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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AI에 의해서 이루어짐

우리는 누구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

젊었을 때에는 좋은 직장을 얻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이르면 더 높은 목표와 더 많은 책임이 기다리고 있다.

은퇴하면 모든 부담에서 벗어날 것 같지만,

그때에도 과거의 직책이나 명예, 다른 사람의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다.

우리를 얽매는 것은 외부의 제약만이 아니다.

때로는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과 두려움이 더 무거운 멍에가 된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자유의 문제를 신앙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바오로는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예로 든다. 한 아들은 여종 하가르에게서 태어났고, 

다른 아들 이사악은 자유의 몸인 사라에게서 태어났다.

바오로는 이 이야기를 두 계약을 설명하는 상징으로 사용한다.

하가르는 율법 아래의 종살이를, 사라는 하느님의 약속에 따라 주어지는 자유를 상징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혈통이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과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삶이다.

율법은 인간이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야만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신앙은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일이 될 수 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러한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셨다고 선언한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이 말씀이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자유를 얻었으면서도

다시 스스로 멍에를 메려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에서도 처음에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기도하고 봉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무와 형식이 앞서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신앙생활을 비교하기도 한다.

누가 더 오래 봉사했는가,

누가 더 많은 일을 했는가,

누가 더 인정받고 있는가를 따지게 된다.

은총으로 시작한 신앙이 어느새 자신의 공로를 증명해야 하는 무거운 짐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욕심과 두려움, 체면과 비교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봉사하고,

보상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나누는 삶이다.

진정한 자유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사랑을 선택하는 데 방해받지 않는 마음의 상태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유의 의미도 달라지는 것 같다.

젊었을 때에는 무엇인가를 더 많이 소유하고 성취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붙잡아 온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기쁘게 바라보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자유일 것이다.

특히 신앙 안에서의 자유는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데서 시작된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가.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인가, 다른 사람의 평가인가, 아직 이루지 못한 욕심인가.

혹시 하느님께서 이미 벗겨 주신 멍에를 내가 다시 찾아 메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세상의 모든 제약이 사라지는 자유가 아니라,

그 제약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신앙의 깊이는 얼마나 많은 의무를 짊어졌는가보다

그 의무를 얼마나 사랑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가에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짊어질 필요가 없는 멍에를 내려놓고 사랑해야 할 것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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