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0.8)의 독서 말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 : 갈라티아서 (3,1-5)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내일(10.8)의 독서 말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 : 갈라티아서 (3,1-5)

제임스
2026-10-07 21:54 7 0

본문


무슨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마음이 순수하다.

새로운 일을 맡았을 때도 그렇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봉사를 시작할 때도 그렇다.

처음에는 보상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일이 좋아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달라질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을까.
왜 저 사람은 나만큼 하지 않을까.
내가 한 일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가.

처음에는 일이 중요했는데 어느 순간 평가와 인정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오늘 바오로 사도가 갈라티아 사람들을 꾸짖는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갈라티아 신자들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율법의 행위와 외적인 조건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으려 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바오로는 묻는다.

신앙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비슷하지 않을까.

처음 하느님을 만나고 마음 깊이 감사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 간절하게

기도했고, 작은 은총에도 감사했으며, 성당에서 맡은 작은 봉사 하나에도 기쁨을 느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오래되면서 익숙함이 찾아온다.

기도와 미사가 습관이 되고, 봉사는 직책이 되며, 때로는 누가 더 많이 일했는가를 따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처음 가졌던 마음보다 형식이 앞설 수도 있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바라보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오로가 말하는 “성령으로 시작하고 육으로 마치는” 모습과도 닿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한다.

바오로가 ‘행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 깊어지면 그것은 반드시 삶의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외면할 수 없고,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소홀히 할 수도 없다.

문제는 행동을 하느님의 은총보다 앞세우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많이 봉사했다.”

이런 생각이 시작되면 신앙은 은총에서 멀어져 자기 공로를 계산하는 일이 되기 쉽다.

신앙은 내가 무엇을 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받은 사랑에 감사하여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는 또 묻는다.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우리에게도 살아오면서 하느님을 가까이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어려운 일을 지나고 나서 ‘내 힘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구나’ 하고 느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체험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다시 자기 힘만 믿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경험이 많아지고 자신만의 방식도 생긴다.

“나는 오랫동안 이렇게 해 왔다.”

“내 경험으로는 이 방법이 맞다.”

경험은 소중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울타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신앙에서도 가끔은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처음 기도했던 마음, 처음 감사했던 마음, 처음 봉사하면서 기뻐했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다.

오늘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으로 시작했으며, 지금은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처음에는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시작했는데 지금은 내 노력과 경력과 공로를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의 성숙은 오래 믿었다는 사실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래 걸어온 뒤에도 내가 받은 모든 것이 은총이었음을 다시 깨닫는 데 있을지 모른다.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처음 나를 움직였던 가장 중요한 것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성령으로 시작한 그 길을, 지금도 성령과 함께 걷고 있는가?”

오래 걸어왔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처음 나를 부르셨던 분을 아직도 바라보며 걷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가톨릭출판사 천주교서울대교구 cpbc플러스 갤러리1898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굿뉴스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문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