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 말씀]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르다 : 고린터 전서 (2,10-16)
본문
오랫동안 함께 지낸 사람도 그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표정은 웃고 있어도 마음속으로는 힘들어할 수 있고,
아무 말 없이 지내는 사람에게 깊은 걱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말한다.
“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
오늘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 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마음도 다 알기 어려운데 하느님의 마음을
인간의 생각만으로 모두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바오로는 말한다.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공부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읽고 연구하고 경험을 쌓으면 지식은 늘어난다.
그러나 지식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삶의 깊은 의미까지 깨닫는 것은 아니다.
식품의 맛도 성분을 분석한다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의 농도와 산도, 향기 성분과 조직감을 측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똑같은 음식이라도 누구와 함께 먹었는지,
어떤 추억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맛으로 느껴질 수 있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말과 행동만으로 상대를 판단하기보다 ‘저 사람에게는 어떤 사정이 있을까?’ 하고
한 번 더 생각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것이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에서
마음으로 깨닫는 데로 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신앙생활에서도 성경을 많이 읽고 교리를 많이 안다고 해서
저절로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 병든 사람과 가난한 사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받던 사람에게 가까이 가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어려운 신학을 모두 이해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사람과 세상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잘못했을 때 비난하기 전에 그 사정을 한 번 더 헤아려 보는 마음.
나를 불편하게 한 사람을 곧바로 판단하기보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는 마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았을 때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그런 작은 변화 속에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열어 주시는지도 모른다.
바오로는 말한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기준은 끊임없이 묻는다.
누가 더 많이 가졌는가.
누가 더 성공했는가.
누가 더 옳은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누가 지금 외로운가.
누가 위로가 필요한가.
내가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가.
오늘 내가 누구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것을 알게 되지만,
동시에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이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만으로 모든 것을 단정하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오늘 바오로의 마지막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과연 오늘 누구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가.
내 경험과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사람을 만날 때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싶다.
‘예수님이라면 이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셨을까?’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깨닫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신앙의 성숙이란 지식을 더 많이 쌓아 가는 것만이 아니라,
내 생각을 조금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조금씩 닮아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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