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독서 말씀] 두렵지 않아서 용감한 것이 아니다 : 예레미아 (1,17-19)
본문
사람들 앞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혼자 다른 의견을 말해야 한다면 쉽지 않다.
괜히 말했다가 관계가 불편해지지는 않을까,
나만 유별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침묵하는 경우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예레미야가 상대해야 할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임금과 대신, 사제와 백성이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전해야 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먼저 말씀하신다.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이 말씀은 예레미야에게 두려움이 없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두려움이 있었기에 하느님께서 용기를 주신 것이 아닐까.
우리도 살아가면서 비슷한 순간을 만난다.
조직에서 잘못된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임자에게 다른 의견을 말하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던
총장님께 서슴없이 직언을 하곤 했다. 듣기 불편한 말을 자주 하다 보니
총장님께서 나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신 적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말씀드리곤 했다.
“제가 총장님을 반대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총장님이 되시고, 우리 대학이 더 좋은 대학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직언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말이어서는 안 된다.
상대와 공동체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어야 한다.
특히 오랫동안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침묵이 얼마나 편한 선택인지 알게 된다.
“다들 그러는데 뭐.”, “내가 나선다고 달라지겠어?”
그렇게 넘어가면 당장은 편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문제가 커지고 나면
‘그때 누군가 한마디라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식품의 안전 문제도 그렇다.
작은 이상 신호가 발견되었을 때 생산을 중단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비용이 들고 일정에도 차질이 생긴다.
그러나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지나쳤다가
소비자의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면 훨씬 더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전문가에게 필요한 용기는 문제가 없다고 안심시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을 때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데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
내 생각을 큰 소리로 주장한다고 모두 예언자의 용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여라.”고 하지 않으셨다.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고 하셨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신앙의 용기는 자신의 고집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무엇이 옳은지를 분별하고, 그것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 때문에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예레미야에게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주신다.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겠다.”
그렇다고 모든 반대를 없애 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다.”
신앙을 가진다고 반대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옳은 일을 한다고 언제나 박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오해받고, 미움을 받고, 혼자 서 있어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다
결국 예레미야를 강하게 만든 것은 그의 성격이나 말솜씨가 아니었다.
‘내가 혼자가 아니다’라는 믿음이었다.
우리도 중요한 말을 해야 할 때 마음이 떨릴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실패가 두려울 수도 있고,
옳다고 믿는 선택 때문에 사람들의 반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만 그 한 걸음이 나의 자존심이나 고집에서 나온 것인지,
상대와 공동체를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는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옳다고 믿는 말을 해야 하는 순간 마음이 떨린다면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고 싶다.
“내가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두렵지 않아서 용감한 것이 아니다.
두렵지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기에 나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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