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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독서 말씀] 네 기도를 듣고 네 눈물을 보았다

제임스
2026-07-16 22:1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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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38장은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임금과,
그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전해 주는 말씀이다.
히즈키야는 병이 들어 죽게 되었고,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뜻밖의 말씀을 듣는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얼마나 절망적인 선고였겠는가.
 
왕이라고 해서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권력과 재물도 생명을 연장해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히즈키야는 사람을 찾지 않고 먼저 하느님께 나아간다.
그는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간절히 기도하며 눈물을 흘린다.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 기도는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맺어 온 관계를 붙잡는 간절한 호소였다.
 
그때 하느님께서 이사야를 다시 보내시며 말씀하신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이 한마디는 성경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 가운데 하나이다.
하느님께서는 히즈키야의 병만 보신 것이 아니라
그의 눈물도 보셨다.
그의 말뿐 아니라 마음까지 들으셨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가족의 건강 때문에,
자녀의 문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 때문에 홀로 기도하는 시간이 있다.
사람들은 그 눈물을 보지 못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기적적인 치유 이야기만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히즈키야에게 열다섯 해의 생명을 더해 주시며,
그 시간을 선물처럼 살아가도록 맡기신다.
 
우리에게도 생명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매일 새롭게 받는 은총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도
모두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이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하느님께서 기적만 베푸신 것이 아니라,
무화과 과자를 종기에 바르라고 하신 점이다.
하느님의 치유는 기도와 함께 현실적인 치료도 사용하신다.
믿음은 치료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와 기도를 함께 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물러간 표징은
시간을 다스리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보여 준다.
인간은 시간을 따라 살아가지만,
하느님께서는 시간 위에서 역사하시는 분이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희망을 전한다.
 
기도가 당장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흘리는 눈물이 헛된 것처럼 느껴져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보고 계신다.
그래서 신앙인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기도할 수 있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이 약속이 오늘도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하느님의 위로이다.

댓글목록1

제임스님의 댓글

제임스
2026-07-16 22:20
이사야 38장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화과 과자를 가져다가 종기 위에 발라 드리면, 임금님께서 나으실 것이오."
여기서 "무화과 과자"는 오늘날의 과자가 아니라 말린 무화과를 으깨거나 반죽처럼 만든
찜질제(poultice)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고대 근동과 이집트에서는 무화과를 상처나 종기에 붙이는 민간요법이 실제로 사용되었습니다.

현대 식품과학적으로 보면
무화과에는 다음과 같은 성분들이 있습니다.
피신(Ficin) : 무화과의 유액(latex)에 많이 들어 있는 단백질 분해효소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항산화 성분
약한 항균 작용을 하는 여러 식물성 성분
특히 피신은 파파야의 파파인, 파인애플의 브로멜라인과 비슷한 단백질 분해효소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괴사된 조직(dead tissue)을 분해하는 데 도움을 줄 가능성
염증 부위의 단백질성 삼출물을 일부 분해할 가능성
등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의학적으로 "히즈키야의 종기가 피신 때문에 치료되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즉시 기적으로 종기를 없애실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굳이 "무화과를 가져다가 종기에 발라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하느님의 방식이다.
나아만은 요르단강에서 몸을 씻었다.
예수님은 맹인의 눈에 진흙을 바르셨다.
디모테오에게는 포도주를 조금 마시라고 권하셨다.
즉 은총은 자연을 무시하지 않고 자연을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식품과학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느님께서는 히즈키야를 치유하시면서 기적만 행하지 않으셨다.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치료법인 무화과 찜질을 함께 사용하게 하셨다.
이는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의 지혜와 의학, 자연 속에 있는 치유의 원리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역사하심을 보여 준다.
오늘날 의학과 식품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약물과 영양, 치료기술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선물이며,
신앙은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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