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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독서 말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예배

제임스
2026-07-12 21:36 1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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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1장은 매우 충격적인 말씀으로 시작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드리는 제사와 기도를 오히려 거절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를 빠짐없이 드렸고, 절기를 지켰으며, 성전에 올라와 기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구보다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나는 이제 그것들에 지쳤다."고 말씀하신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예배는 드렸지만 삶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전에서는 하느님을 찬양했지만, 
세상에서는 약한 사람을 짓밟고, 불의를 외면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다. 
입술은 하느님을 찾았지만 손은 여전히 "피로 가득하다"고 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제사 자체를 싫어하신 것이 아니다. 
삶과 분리된 신앙을 싫어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백성에게 새로운 제사를 요구하지 않으신다. 대신 삶의 방향을 바꾸라고 말씀하신다.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참된 신앙은 성당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주일미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면서도 직장에서는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열심히 봉사하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기도는 많이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는 무관심할 수도 있다.
그런 삶이라면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같은 질문을 하실 것이다.
"너의 예배가 너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느냐?"
실생활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회사의 대표는 교회에서는 신실한 신자로 알려져 있었다. 
헌금도 많이 하고 봉사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임금을 자주 미루고, 부당하게 일을 시키며, 
어려운 직원들의 형편에는 무관심했다.
반면 또 다른 작은 공장의 사장은 특별히 드러나는 신앙인은 아니었지만,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정을 살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후자의 모습을 보며 "저 사람이야말로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바로 그런 삶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다가 형제와 불화한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해하고 와라."
예배보다 화해를 먼저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화해 없는 예배는 완전한 예배가 될 수 없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사야는 마지막으로 매우 구체적인 실천을 제시한다.
공정을 추구하라.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찾아 주어라.
과부를 두둔하여라.
당시 고아와 과부는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상징이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홀로 사는 노인,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보신다.
결국 신앙은 성당 안에서 드리는 한 시간의 예배보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머지 시간의 삶으로 증명된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기도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느님께서는 화려한 제사보다 정직한 삶을,
많은 말보다 사랑의 실천을,
긴 기도보다 약한 이웃을 향한 따뜻한 손길을 더 기뻐하신다.
예배는 성전에서 시작되지만,
완성은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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