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 말씀] 누구와 사는가
본문
사도행전의 이 장면은 단순히 박해 속에서도 용감했던 사도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을 믿느냐’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 곧 “누구와 살아가느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교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계신 예수님과의 관계 때문에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그 관계가 그들을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베드로를 떠올려 보면, 그는 결코 완벽한 신앙인의 전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두려움 앞에서 무너졌고, 인간적인 약함을 숨기지 못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에서 그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권력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사람보다 하느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변화는 그의 의지가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생활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신앙은 완벽함을 향해 가는 도덕적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가 깊어지는 여정입니다.
요한 복음이 말하는 ‘생명’ 역시 바로 그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생명은 어떤 상태나 결과가 아니라, 살아 계신 분과의 끊임없는 만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디를 향해 가야 할까요?
먼저, ‘두려움에서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을 심판자로만 생각하며, 잘못했을 때만 그분을 찾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분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멀리 계신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숨 쉬는 분이었습니다.
신앙은 두려움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라납니다.
둘째로, ‘순간의 신앙에서 일상의 동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만 하느님을 찾는 신앙은 아직 관계가 깊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베드로가 변화된 것은 부활 이후 예수님과 함께 먹고, 걷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서였습니다.
신앙은 특별한 순간의 결심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습관입니다.
셋째로, ‘완벽함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더 나은 신앙인’이 되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지치곤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관계 맺기를 원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베드로가 다시 세워진 이유는 그가 흠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실패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다시 관계로 돌아오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증인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도들은 단순히 믿는 사람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난 분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부활을 증언한다는 것은 결국,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선택하고 ,
두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초대입니다.
완벽해지려고 애쓰기보다, 더 자주 그분을 의식하고, 더 깊이 그분과 대화하며,
더 진실하게 그분 앞에 서는 것—그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죽음을 무릅쓴 사도들의 용기는 결코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관계가 깊어질 때 인간이 얼마나 변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 역시 그 관계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갈 때,
비록 여전히 부족하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삶, 살아 있는 신앙의 길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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