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복음 말씀] 문 앞의 라자로
본문
사순 시기가 되면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고.
그러나 복음은 때때로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온몸이 종기로 덮여 있었고, 그저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바라며 하루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부자가 라자로를 괴롭혔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를 쫓아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의 죄는 단 하나였습니다.
보지 않았다는 것.
라자로는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문 앞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자는 매일 그 문을 드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라자로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한 사람의 고통은 조용히 배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죄는 꼭 악한 행동으로만 나타나는가?
때로는 무관심이 더 깊은 죄가 되지 않는가 하고 말입니다.
저 역시 이 말씀을 묵상할 때면 제 삶의 몇 장면이 떠오릅니다.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그 마음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조용한 부끄러움이 스쳤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 이후로는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이 들리면,
큰일이 아니더라도 먼저 다가가 보려 하였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잠시 이야기를 들어 주는 시간,
함께 식탁을 나누는 작은 자리만으로도
사람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미움은 여전히 상대를 의식하지만,
무관심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립니다.
부자와 라자로 사이에 생긴 “큰 구렁이”는
죽은 뒤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 조금씩 만들어진 거리였습니다.
하루의 무심함이 쌓이고, 편안한 삶의 익숙함이 굳어지면서
생겨난 보이지 않는 벽이었습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 삶의 문 앞에는 누가 서 있는가.
나는 누구를 보지 않으려 하며 지나가고 있는가.
누군가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
그 구렁이는 조금씩 메워지기 시작합니다.
사순은 단지 죄를 고백하는 시간이 아니라
무관심에서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깨어남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바로 문 앞에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
그 작은 눈맞춤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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