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제2독서 말씀] 이미 주어진 은총, 걸어온 소명
본문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제 삶의 시작점이 조금 달라집니다.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이미 무엇이 주어졌는가를 먼저 묻게 되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길은 계획의 결과라기보다
부르심의 응답이었습니다.
식품을 공부하게 된 일도,
감각을 탐구하게 된 일도,
연구실에서 밤늦도록 데이터와 씨름하던 시간도,
어느 날 갑자기 제 손에 쥐어진 과제가 아니라
이미 제 안에 심겨 있던 씨앗이 자라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은총은 보상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무언가를 잘했기 때문에 받은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를 통해 무엇을 하라고 맡겨진 자리였다는 깨달음 말입니다.
학문의 길에서 몇 번의 ‘산 위’ 체험이 있었습니다.
흩어진 결과가 하나의 의미로 이어지던 순간,
연구가 산업과 현장을 잇는 다리가 되던 장면,
학생이 제 스승이 되어 돌아오는 기쁨.
그때마다 “아, 이 길이 맞구나” 하는 확신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빛은 고난을 지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빛은 고난을 통과할 힘을 줍니다.
연구의 성취 뒤에는 책임이 따랐고,
직함 뒤에는 오해와 침묵을 감당해야 할 시간도 있었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박수보다 인내를 더 요구했습니다.
그때마다 떠오른 것은
‘이미 주어진 은총’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은총이 먼저라면,
나는 결과를 증명하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맡겨진 자리를 성실히 걸어가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죽음의 폐지는 생물학적 소멸의 제거가 아니라
절망의 최종 권위가 깨졌다는 선언입니다.
연구의 실패도,
관계의 단절도,
시대의 혼란도
마지막 말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소명은 성취의 연속이 아니라
응답의 반복입니다.
저는 이제 제 삶을 업적의 목록으로 세기보다
응답의 자리로 돌아보게 됩니다.
가르침의 자리에서,
연구의 자리에서,
나눔의 자리에서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해 온 시간들.
은총은 나중에 얻는 상이 아니라 이미 받은 빛입니다.
그 빛이 있었기에 어둠 속에서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 빛이 있었기에 다음 세대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부르셨고,
저는 그 부르심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뿐입니다.
이제 남은 시간도
그 부르심에 대한 또 하나의 응답이기를 바랍니다.
이미 주어진 은총 안에서,
오늘도 조용히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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