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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말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의 깊이

제임스
2026-02-28 00:11 4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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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 전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때
어떻게 원수를 사랑해요. 저는 도저히 사랑 못해요!”
한 아이가 책상과 의자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외치던 생각이 난다.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지 못하여 당황했던 시절이 있었다.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이 말씀은 언제 들어도 쉽지 않다.
원수를 미워하지 말라는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하라니, 그것도 기도하라니,
상식과 감정이 동시에 멈춰 서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감정을 억누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미워도 사랑하는 척하라는 위선의 기술을 가르치시는 것도 아니다.
그분은 우리의 사랑의 경계를 넓히고 계시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


하느님의 사랑은 선택적이지 않다
.
조건을 따지지 않고, 자격을 계산하지 않는다.
햇빛과 비처럼, 차별 없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합니다.
나를 존중하는 사람에게만 친절합니다.
나를 지지하는 사람에게만 인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묻습니다.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사랑이 계산을 따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세상의 방식입니다.

복음은 더 높은 의로움을 요구합니다.
나를 어떻게 대했는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를 닮을 것인가를 묻습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일이 아니다.
상처를 무시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미움의 고리를 끊는 선택이다.
보복의 구조를 멈추는 용기다.

미움은 자연스럽지만, 사랑은 선택이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순간내 마음의 독이 조금씩 빠져나갑니다.
상대를 바꾸기 이전에 내가 자유로워집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완전함은 흠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느님을 닮는 상태입니다.
사랑의 범위가 넓어지는 상태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나는 미움의 방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방식으로 갈 것인가.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언제나 쉬운 길이 아니라 하느님을 닮는 길을 제시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불가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닮으라는 초대입니다.

그리고 그 초대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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