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서 말씀] 마음을 돌리신 하느님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오늘의 독서 말씀] 마음을 돌리신 하느님

제임스
2026-02-25 07:33 78 0
  • - 첨부파일 : 14-4.png (600.6K) - 다운로드

본문

요나서의 이 장면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예언자는 마지못해 외쳤고, 이방 도시는 전심으로 응답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십니다.”

 

요나의 외침은 단 한 문장입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회개의 방법도, 자비의 가능성도, 구원의 조건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심판의 선언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니네베 사람들은 그 짧은 경고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읽어냅니다.
그들은 멸망의 확정이 아니라 돌이킬 시간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경고는 파괴를 위한 통보가 아니라,
돌아오라는 마지막 초대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임금의 행동입니다.

왕좌에서 일어남, 겉옷을 벗음, 자루옷을 걸침, 잿더미 위에 앉음

권력의 상징에서 철저히 내려오는 행위입니다.
 

회개는 감정이 아니라 위치 이동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지배의 자리에서 책임의 자리로,
자기 확신에서 두려움과 겸손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


임금은 단지 개인적으로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
그는 사회 구조 전체를 돌이키려 했습니다.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여기서 회개는 개인 윤리를 넘어 공동체적 정의 회복을 뜻합니다.

 

이 본문에서 독특한 점은 짐승까지 금식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이 장면은 단순한 극적 과장이 아닙니다.
성경적 사고에서 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창조 질서를 흔드는 행위입니다.
폭력과 탐욕은 인간만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를 병들게 합니다.

따라서 회개 역시 피조 세계 전체의 회복을 향합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생태 위기
, 기후 문제, 전쟁과 구조적 폭력 역시
니네베의 폭행과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회개는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돌리는 생태적·사회적 전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하느님이 마음을 바꾸신다는 표현은
하느님의 변덕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의 진노는 파괴적 감정이 아니라
악에 대한 정의로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그 정의의 목적은 항상 회복에 있습니다.

니네베가 돌아서자 하느님께서는 심판을 멈추십니다.

이 장면은 하느님이 벌을 주고 싶어 하는 분이 아니라
용서할 기회를 기다리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흥미롭게도, 이야기 속에서 가장 회개하지 않는 인물은 요나입니다.
니네베는 변했지만, 요나는 끝까지 마음이 좁습니다.

그는 자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니네베가 아니라 요나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저 사람은 벌받아야 한다.

저 도시는 무너져야 한다.

저 집단은 심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보다 더 오래 참고,
우리보다 더 넓게 품으십니다.

 

이 본문은 과거의 이방 도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안에도 폭력, 탐욕, 거짓, 무관심이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은 여전히 울립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성경에서 사십은 전환의 시간입니다.
광야의 사십 년, 예수님의 사십 일 단식.
끝이 아니라 새 출발의 준비 기간입니다.

 

하느님은 파괴를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돌아오는 발걸음을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니네베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도시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길도
아마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잿더미에 앉는 그 자리.

거기서부터 하느님의 자비는 다시 시작됩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적용하기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가톨릭출판사 천주교서울대교구 cpbc플러스 갤러리1898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굿뉴스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문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