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복음 말씀] 기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본문
식품 안전 현장에서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규정상 안 됩니다.” 이 말은 틀리지 않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왜 안 되는지를 묻지 않을 때,
규정은 생명을 지키는 울타리가 아니라 사람을 묶는 족쇄가 되기 쉽다.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며 이삭을 뜯어 먹는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이를 본 바리사이들은 곧바로 규정을 들이댄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도 사실이다.
율법에는 분명히 금지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질문의 방향을 바꾸신다.
규정을 어겼느냐가 아니라, 규정이 왜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식품 안전 기준은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규정의 출발점은 하나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식품의 유통기한은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날짜가 의미하는 것은 “이 이후에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먹을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 숫자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다면
기준은 보호가 아니라 방기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이야기를 꺼내신다.
배고픈 다윗이 사제만 먹을 수 있는 제사 빵을 먹었던 사건이다.
율법만 놓고 보면 분명한 위반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생명을 향해 있었다.
식품 안전 사고의 또 다른 원인은 기준 자체보다 기준을 절대화하는 태도다.
“규정은 규정입니다.”
“원칙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칙이 사람보다 앞설 때, 그 순간 기준은 목적을 잃는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기준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을 해치기 시작한다면, 그 기준은 이미 본래의 자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식품 안전이든, 신앙의 규범이든,
우리가 늘 되묻지 않으면 안 되는 질문이 있다.
이 기준은 지금 누구를 살리고 있는가.
예수님은 규정을 무너뜨리신 것이 아니다.
규정을 제자리로 돌려놓으셨다.
사람을 위한 자리,
생명을 향한 자리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이 말씀은 규정을 초월한 권력의 선언이 아니라,
기준의 목적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생명에 대한 선언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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