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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말씀] 접촉과 오염, 그리고 정결의 재해석

제임스
2026-01-14 23:08 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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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병 환자 치유 이야기


군 시절 폐결핵으로 인하여 국군마산통합병원에서 장기간 치료를 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병의 정도에 따라 별도 격리된 곳이 있는데 가장 심한 상태인 병실에선 한 달에 두 세명씩 죽어서 나갔다. 죽은 사람이 나가고 나면 소독을 심하게 하는데 그 소독 냄새가 남아 있는 환우들에겐 죽음을 재촉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곳은 의무병이나 간호장교조차도 업무를 수행하러 오기를 꺼리는 곳이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있는 환자들은 더 이상 감염 위험도가 낮아 중증 환자 병실을 방문하곤 하였다. 공소를 방문하는 수녀님께서는 우리들이 그 곳을 방문하여 좋은 말벗이 되어 그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라면도 끓여주고 몸도 주물러 주라고 하였다. 병이 너무 심한 환자들은 근육은 없고 뼈만 남아 있으며 피부에 비늘이 생겨 온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어야 했다. 기침을 할 때면 정상인과는 달리 움추려 꿇어 앉은 자세에서 고통을 적게 하려고 발버둥치며 기침을 하였다. 그들은 혼자서 걷지도 못하였다.
나는 약을 먹고 있어 그들과 친구가 되어 주는 일이 가능하였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만져주시는 장면을 읽으며 그 시절이 생각난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에게서 물러서지 않으셨고, 오히려 손을 내미셨다.
그 손길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위험 행위였다.

나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염의 공포가 깃들여 있고, 사회적으로 배제의 대상으로, 종교적으로는 부정한 결과가 겹쳐진 상태였다.
오늘날 식품 현장에서라면 즉각 격리 조치가 내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묻지 않으신다.
얼마나 심각한가?”
전염 가능성은?”
절차는 밟았는가?”

대신, 손을 내미신다.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 장면은 매우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감염이나 오염은 과연 무엇인가?

 

식품과학에서 오염은 물질의 문제다.
미생물, 독소, 화학물질측정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대상이다.
그러나 이 복음에서 문제 삼아지는 오염은 다르다.

이 나병 환자를 가장 깊이 병들게 한 것은 피부의 병변이 아니라,
아무도 자신에게 손을 대지 않는 삶이었다.


예수님은 그 점을 정확히 아신다.
그래서 치유는 말보다 먼저, 접촉으로 시작된다.
깨끗하게 되어라는 선언 이전에,
이미 그 사람은 사람으로 다시 대우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이 치유 후에
율법적 절차를 무시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바치라고 하신다.

이것은 과학자의 태도와도 닮아 있다.
과학은 질서를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질서의 목적을 재정의할 뿐이다.

정결은 배제의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로 돌아오기 위한 통로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정결의 기준을 폐기하지 않고,
그 방향을 다시 바로잡으신다.

과학은 말한다. 접촉은 위험할 수 있다.”

신앙은 말한다. 그러나 모든 접촉이 오염은 아니다.”

식품 안전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미생물이 해로운 것은 아니며, 모든 발효는 부패가 아니다.
때로는 접촉이야말로 생성을 일으키는 조건이 된다.

예수님의 손길은 그런 접촉이었다.
오염을 확산시키는 접촉이 아니라,
생명을 회복시키는 접촉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더 두려워하는가?

병인가, 아니면 병든 사람과의 접촉인가.

위험인가, 아니면 위험을 핑계로 한 거리두기인가.

예수님은 정결을 다시 정의하신다.
깨끗함이란, 아무것도 묻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손을 내미는 용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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