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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성경 말씀]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외딴곳으로 가시다

제임스
2026-01-13 22:19 1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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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나오시자마자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신다.
말씀의 자리를 떠나, 삶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이다.
병든 이가 누워 있고, 가족의 숨결이 남아 있는 그 공간은 교리의 장소가 아니라 생활의 현장이다.
이 장면은 실험실이 아니라 주방으로 들어오신 모습과도 같다.
생명은 언제나 생활 속에서 회복되기 때문이다.

시몬의 장모는 열병으로 누워 있었다.
열은 몸이 보내는 신호다.
싸우고 있다는 신호이자, 동시에 균형이 무너졌다는 알림이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신다.
설명도, 조건도 없다.
접촉 하나로 열은 가시고, 삶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인은 곧 그들의 시중을 든다.
회복은 멈춤이 아니라 다시 관계 안으로 들어오는 것임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해가 지자 사람들은 몰려온다. 온 고을이 문 앞에 모인다.
요청은 많고, 필요는 끝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시지만,
그렇다고 그 흐름에 붙들려 계시지도 않으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직 캄캄한 새벽에 외딴 곳으로 나가신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멈추어 서게 된다.
예수님께서 굳이 외딴곳을 찾으신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대화였다.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조용한 장소를 찾는다.
마음 깊은 이야기를 꺼낼수록,
방해받지 않는 공간을 원한다.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면,
그분과의 깊은 대화를 위해서도 그런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다.
길을 걸으며,
버스 안에서,
일상의 틈에서도 하느님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진지한 대화를 원할 때, 우리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는다.
예수님께서 외딴곳을 찾으신 것은 피신이 아니라
사랑의 대화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뜻을 묻고, 다시 길을 떠날 방향을 정하셨다.

식품 공정에서도 연속적인 생산만으로는 품질을 지킬 수 없다.
반드시 조용히 점검하고, 조건을 재정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기도는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소진된 뒤의 회복이 아니라, 사명의 균형을 바로잡는 시간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성당에 들어가 성체 앞에 앉아 있는 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머무는 시간.
그것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알고 계시는 분 앞에 자신을 놓아두는 시간이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고요 속에 머무는 것 자체가 기도가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 후에 머무르지 않으신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고요는 목적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잡기 위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수님은 다시 길을 떠나신다.
식품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치유와 사명, 일과 기도는 분리되지 않는다.
고요한 대화가 있어야 삶은 다시 움직이고,
멈춤이 있어야 생명은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리도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주님과 단둘이 머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고요가 다시 우리의 삶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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