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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말씀] 다시 먹을 수 있게 된 사람

제임스
2026-01-13 22:17 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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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 상권 1,9-20

이 장면에서 눈여겨볼 첫 문장은 의외로 기도의 시작이 아니다.
실로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섰다.”
사무엘기의 결정적 전환은 먹고 마신 뒤에 시작된다.
앞선 이야기에서 한나는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슬픔 때문이었고, 억울함 때문이었으며,
무엇보다 자기 자리가 지워진 식탁 앞에서 몸이 먼저 닫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먹고 마신 뒤에 일어선다.
이 변화는 작아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몸이 다시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
스트레스와 상실이 극에 달하면, 인간의 몸은 소화 기능부터 차단한다.
위장은 수축하고, 식욕은 사라지며, 음식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앞선 장면에서 한나가 울기만 하고 먹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몸은 이미 감당의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그런 한나가 이제 음식을 먹고 일어선다. 아직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를 얻은 것도 아니고, 상황이 바뀐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몸의 상태는 이미 달라졌다.
이것이 이 본문의 중요한 지점이다.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한다
.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기도가 소리 없는 기도라는 사실이다.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엘리 사제가 그녀를 술 취한 여자로 오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몸의 상태가 만들어낸 장면으로 보인다.

극심한 정서적 긴장 상태에서는 호흡과 발성이 억제된다.
소리는 나오지 않고, 말은 안쪽으로 접힌다.
이는 의도적인 침묵이라기보다, 몸이 선택한 표현 방식이다.

한나의 기도는 잘 구성된 문장이 아니라
,
마음이 몸을 통해 흘러나온 상태에 가깝다.
그녀는 하느님 앞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마음을 털어놓는다고 말한다.
이 표현은 음식으로 치면, 가공이 아니라 그대로 쏟아내는 행위에 가깝다.


엘리는 그녀를 오해한다. 술에 취했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당시 사회에서 술은 통제력을 잃은 상태, 경계가 흐려진 상태를 상징한다.
그러나 한나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눌려 있던 감정이 넘쳐흐른 상태였다.
그녀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신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몸과 마음이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

그리고 엘리가 말한다.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 말이 기도의 응답처럼 들리지만, 진짜 변화는 그 다음에 있다.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전과 같이 어둡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음식이 등장한다.

기도의 응답은 즉각적인 기적이 아니라
, 식욕의 회복으로 나타난다.

얼굴빛이 달라졌다는 것은, 몸의 자율신경 상태가 바뀌었다는 신호다.
긴장이 풀리고, 소화가 다시 시작되며,
몸이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는 뜻이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잉태가 가능한 몸의 상태는 이미 마련된 셈이다.


식품과 생리의 관점에서 보면
,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몸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억압은 생식 기능을 억제한다.
그러나 몸이 다시 먹고, 마시고, 숨 쉬며, 안정을 회복할 때,
비로소 생명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얻는다.


주님께서 한나를 기억해 주셨다.”
그러나 그 기억은 갑작스러운 개입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다시 열리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기억처럼 보인다.
하느님의 응답은 기도의 순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식탁으로, 얼굴빛으로, 일상의 리듬으로 스며든다.


사무엘의 탄생은 기도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먹을 수 있게 된 한 사람의 회복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하느님의 구원은 언제나 초월적인 사건으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
얼굴이 밝아지는 것,
몸이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처럼 아주 생리적인 변화로 먼저 다가온다.

한나가 다시 먹었을 때, 역사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무엘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를 맞이할 몸과 삶은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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