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지나가고 남는 것
본문
(요한 1서 2,12-17)
몇 해 전의 일이다. 정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맡았던 일 하나가 있었다.
크지 않은 자리였지만, 나로서는 꽤 마음을 쏟았던 일이었다.
회의도 많았고, 이해관계도 복잡했다.
무엇보다 “이 정도 나이면 이쯤은 인정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알지 못할 기대가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은 결국 내가 생각한 방향과는 다르게 마무리되었다.
내가 세운 계획은 반쯤만 반영되었고, 결과에 대한 평가는 기대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괜히 마음이 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에 이런 허탈함을 느껴야 하나.’
그날 저녁, 아무 생각 없이 성경을 펼쳤다가 요한 1서 이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 문장이 이상할 만큼 담담하게 다가왔다.
나를 꾸짖거나 위로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지나간다.
붙잡으려 애쓸수록 더 빨리 지나간다.
곰곰이 돌아보니, 그 일을 하며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사명이 아니라 자만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보다 어떻게 보일지가 더 중요해졌던 순간들이 있었다.
요한이 말한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이 바로 그 모습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며칠 뒤, 우연히 그 일을 함께 했던 후배 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교수님, 그때 해주신 말 덕분에 제가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공식적인 평가도, 기록으로 남는 성과도 아니었지만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지나간 것은 내가 붙들고 있던 욕망이었고,
남은 것은 누군가의 삶에 스며든 의미였다는 것을.
요한은 말한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그 뜻은 거창한 계획표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용히 책임을 다하고, 조금 내려놓고, 나를 드러내기보다 사람을 세우는 선택 속에 있었다.
삶을 오래 살아보니 알겠다.
자녀의 자리는 용서받았음을 아는 자리이고,
젊은이의 자리는 흔들리면서도 싸우는 자리이며,
아버지의 자리는 지나간 것과 남은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자리라는 것을.
그날 이후로, 무언가에 마음이 요동칠 때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것은 지나갈 것인가, 아니면 남을 것인가.
대부분의 것은 지나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조용한 은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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