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깨어 있음이란 마음의 등불을 지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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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유학의 마지막 짐을 싸 들고 귀국하던 날, 내 주머니에는 200만 원이 전부였다.
돌아온 고국은 반가웠지만, 삶의 시작점은 참 초라했다.
이 돈으로는 눈앞의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했고, 당연히 집을 마련한다는 건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기에, 은행에서 무담보로 500만 원을 빌리고 과 내 선배 교수님께
다시 500만 원을 빌려 공릉동의 작은 단칸방 전세를 마련했다.
그 좁은 방 한 칸에서 세 식구의 삶이 조심스레,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으며 시작되었다.
전세값이 오를 날을 대비하려면 반드시 저축을 해야 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삶엔 자연스레 ‘내핍’이라는 단어가 배어들었다.
조그마한 월급의 75%를 꼬박 꼬박 저축하고, 남은 25%로 한 달을 버티는 날들이 이어졌다.
외식은 사치였고,
여행은 먼 세상의 이야기였다.
모임에 가고 싶어도 마음보다 형편이 더 먼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10년을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19평짜리 시영아파트에 입주하던 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뻤다. 모든 것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우리도 이제 외식이란 걸 해볼까?’
그렇게 작은 즐거움을 꿈꾸던 어느 날, IMF가 터졌다.
거리엔 실직 소식이 떠돌고,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절망의 벼랑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시절, 뉴스 헤드라인을 보는 것조차 숨이 막힐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말 그대로 ‘정신적 흔들림 없이’ 그 거대한 폭풍 한가운데를 건넜다.
왜였을까?
돌이켜보면, 우리는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핍의 시간들은 우리를 애써 가난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위기를 견뎌낼 힘을 길러 주고 있었던 셈이다.
언제 올지 모를 날을 대비해
조용히, 묵묵히 마음의 등불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깨어 있음”이 바로 이런 삶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시대를 예로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홍수가 닥쳐 올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마태 24,38-39)
삶의 표면만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는 다가오는 변화를 보지 못한다.
기쁨의 순간에도, 평화의 시기에도 언제나 마음 한쪽에
‘준비’라는 작은 등불을 켜 두는 것— 그것이 깨어 있음이다.
깨어 있지 않은 삶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쉽게 흔들린다.
그러나 깨어 있는 삶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내가 살았던 내핍의 세월은 부족함을 견디는 시간만이 아니었다.
그 시절은 마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던 시간,
삶의 태도가 단단히 다져지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IMF의 거센 파고 속에서도 우리는 휩쓸리지 않았다.
그 고요한 내핍의 시간들이 우리 집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 24,42.44)
깨어 있음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언제 오실지 모를 주님을 향한 그리움,
언제 닥칠지 모를 삶의 폭풍에 대비하는 겸손,
언제든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정돈하는 성실함.
이 세 가지가 우리를 지켜 준다.
그리고 그 모든 준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상 속에서 빛을 낸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삶의 크고 작은 위기 앞에서
자신만의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방주는 화려한 배가 아니라
작고 겸손한 내핍의 삶,
묵묵히 쌓아 올린 성실과 준비의 조각들,
그리고 깨어 있는 마음의 등불로 이루어진다.
깨어 있음—그것은 주님께서 오시는 순간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에 필요한 가장 깊은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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