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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말씀] 열매가 돋아나는 자리에서

제임스
2025-11-28 06:11 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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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기 직전, 아직 공기가 차갑게 느껴지는 아침이면

나는 종종 아파트 마당의 나무들을 둘러보곤 한다. 특별히 눈여겨보는 나무는 은행나무다. 해마다 잎이 돋아나는 속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 작은 변화 하나가 계절이 바뀌는 신호가 되어 준다.

   어느 해였던가. 무릎 시술 후 재활 운동을 위해 천천히 마당을 걷다가 은행나무 가지 끝에 조그맣게 돋아난 열매를 발견한 순간이 있었다.  그 열매가 마치 “괜찮습니다, 이제 다시 걸을 수 있습니다” 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했다. 그날 따라 유난히 따뜻했던 햇살 속에서 몸의 회복 뿐 아니라 마음의 회복까지 시작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작은 열매 하나가 주는 희망이 이렇게도 크구나,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깊이 느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자연의 질서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신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알게 된다.”

하느님 나라도 그렇게 나타난다고, 소리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나타남을 가르치신다. 우리 삶에서도 그렇다.큰 변화가 오기 전에는 늘 아주 작은 징후가 먼저 다가온다. 

가족의 식탁 위에서 오랜만에 들린 밝은 웃음, 

한동안 서먹했던 동생이 먼저 건넨 짧은 안부 문자, 

손주가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괜찮지?” 하고 묻던 그 따뜻한 손길…
이 모든 것이 열매가 맺으며 노란 잎으로 태어나 듯한 은총의 신호였다.


    세상이 어지러워 마음이 흐릿해질 때도 있다.

뉴스를 보면 걱정이 많아지고,

몸이 아픈 가족 한 사람이 생기면 집안 전체가 뒤숭숭해진다.

그럴 때면 문득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어둠의 순간에도 하느님은 한 걸음 더 가까이 오신다는 뜻일 것이다.

병원에서 가족의 손을 잡고 장시간 대기하던 날,

답답함과 불안 속에서도

어느 순간 이상하리 만큼 마음 한쪽이 잔잔해졌던 경험이 있다.

그 평화는 인간의 마음에서 나올 수 없는 평화였고,

그 자리에 이미 하느님께서 오고 계셨음을 뒤늦게 알았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 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말, 사라지지 않는 약속.

가족을 잃고 큰 슬픔 속에 울던 어느 지인께서

성경 말씀 한 구절을 손에 꼭 쥐고 “이 말씀이 있어서 견딜 수 있어요.” 라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말씀은 폭풍 속에서도 등대처럼 우리를 길 위에 서 있게 해 준다.


오늘도 나는 다시 은행나무를 바라본다.

은행잎이 모두 떨어지기엔 아직 이르지만,

가지 끝에서 조용히 다음 생명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음도 그렇다.

희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부터 천천히 자라고,

어느 날 문득 은행열매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삶이 잠시 멈춘 듯 보이는 순간에도,

하느님의 나라는 한 걸음 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 은총의 징후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오늘도 조용히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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