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 2 ] 마음을 알아본다는 것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오늘의 성경 말씀 2 ] 마음을 알아본다는 것

제임스
2025-11-24 07:58 19 0
  • - 첨부파일 : 219.jpg (48.2K) - 다운로드

본문


― 과부의 두 렙톤을 떠올리며


과부가 성전에 들어와

손바닥보다 작은 두 렙톤을 살며시 올려놓던 장면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 이야기만 들으면

언제나 마음 한쪽이 잔잔히 떨린다.


사람들의 시선은 부유한 이들이 쏟아 붓는 황금에 머물러 있었지만,

주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순간,

그 여자에게서 흘러나오는 마음의 울음을 들으셨다.

그 이야기는 오래도록 내 교직 생활의 그림자처럼

나를 뒤따라왔다.


시험지를 앞에 둔 학생들을 바라보면

겉으로는 모두 똑같아 보였다.

같은 책상, 같은 조명, 같은 시간,

그리고 같은 문제.

그러나 그 종이 한 장 뒤에 놓인 그들의 삶은

서로 다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아가는

수천 개의 이야기였다.


어떤 학생은

집안이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여

중간중간 숨을 고르며 공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또 어떤 학생은

예고 없이 찾아온 가족의 병환과 싸우며,

눈물 젖은 베개를 돌려가며

책을 붙잡았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던 이가 갑작스레 군대를 간다고 말해

잠들지 못한 밤을 한참 지나서야

눈을 감을 수 있었던 학생도 있었을 것이다.

그 마음의 쓸쓸함은

아무도 모르게 시험지 구석에 묻어났을지 모른다.


공부하던 방에 정전이 나

촛불 아래 흔들리는 그림자와 싸우며

마지막 한 줄을 읽으려 애썼던

젊은 영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시험 점수라는 이름의 숫자들 사이에는

말하지 못한 사연들이 숨어 있었다.

부유함과 빈곤, 평온과 폭풍,

사랑과 상실,

모두가 각각의 렙톤처럼

그 마음 속에 고요히 담겨 있었다.


나는 주님께

그 마음들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달라고

종종 기도했다.

과부의 두 닢을 알아보신 주님처럼

학생의 마음도

그 실력의 점수가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까지 살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 기도는

끝내 내게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주님이 아니었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았으며,

때로는 학생의 삶을 이해하기엔

너무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자리였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작은 여지,

한 줄기의 숨구멍을 내어 주는 일이었다.


학기말 시험에서

예상치 못한 사정으로

중간고사나 참여도가 부진했던 학생들,

힘겹게 따라오던 이들에게

마지막 한 번의 희망을 건네는 일.


Top 3에 들 만큼만 해낸다면

그전에 있었던 모든 어려움은 묻지 않겠다고,

A학점을 주겠다고 나는 말하곤 했다.


그것은

두 렙톤처럼 미약해 보이는 선택이었지만

어떤 학생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손잡이였고,

어떤 학생에게는

세상의 무게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언덕이었다.


과부의 두 닢을

누구보다 귀하게 보신 주님을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학생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보지 못한

내 한계가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마음을 흉내 내보려 하는 노력만큼은

내 교직 생활을 부드럽게 감싸주던

따뜻한 기도였다.


재직시절  나는 문득

빈 강의실의 적막을 가르는 조용한 햇살을 보며

그들의 사연을 떠올리곤 하였다.

점수가 아니라 마음을 바라보는 일,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이유를 듣는 일,

그 일들이야말로

과부의 두 렙톤이 가르쳐 준

작고도 고귀한 지혜였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적용하기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가톨릭출판사 천주교서울대교구 cpbc플러스 갤러리1898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굿뉴스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문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