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빛 속에 걷는 길
본문
오늘의 성경 말씀( 이사 2,5 / 로마 10,17 / 마태 28,20 ) 에 대한 묵상수필입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 나는 한 척의 보트를 타고 태평양 한가운데를 향해 나아간 적이 있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고, 바람은 매섭게 얼굴을 스쳤다. 한참을 달려가도 사방이 어둠 뿐이었다. 그때 느꼈던 공포는 마치 지옥의 문턱에 선 듯한 절망이었다. 그러나 멀리서 아주 작은 불빛 하나가 보였을 때,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조그만 불빛이 내게 주었던 안도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 빛은 단순히 어둠을 밝혀 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평화로 감싸 주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햇빛은 너무도 환하다. 그래서 그 찬란함에 익숙해져, 그 고마움을 잊고 산다. 어쩌면 하느님의 사랑도 이와 같을지 모른다. 너무 크고, 너무 넓어서, 그 사랑이 늘 내 곁에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햇빛은 단순히 세상을 비추는 자연의 빛이 아니라, 마음의 어둠을 걷어내는 또 다른 빛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의 말씀을 펼치며 문득 떠오른 구절이 있다.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5)
이사야 예언자의 초대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하다. 그는 전쟁과 탐욕, 절망의 시대 속에서도 하느님의 빛을 바라보라 외쳤다. 그 빛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등불이며,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는 회개의 빛이다.
나 또한 삶의 여러 갈림길에서 그 빛을 잃고 방황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뜻밖의 순간에—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나, 낯선 이의 다정한 미소 속에서—다시 길이 열리는 체험을 하곤 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빛이 내게 스며드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빛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들어 바라볼 때, 이미 그 빛은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고요해진다.
믿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들음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햇빛이 스며들듯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다.
삶의 소음이 커질수록 우리는 듣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말보다 내 생각이 앞서고, 내 중심으로만 세상을 판단한다. 모든 것을 내 뜻대로 결정하려 한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조용히 묻는다.
“너는 과연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
나는 그 물음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들려오지만, 내가 귀를 닫고 있는 것이다.
미사 중 복음의 한 문장, 친구의 격려, 바람에 실린 자연의 소리 속에서도 그분의 음성은 늘 살아 있다.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말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들을 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그 들음은 사랑으로 마음을 여는 순간 시작된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약속이다.
‘세상 끝 날까지’—그 말에는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 외로움 속에서도, 실패와 상실의 순간에도 그분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잊을 때조차, 그분은 여전히 곁에 계신다.
신앙의 여정을 걸으며 가장 깊이 깨달은 것은, 하느님은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작은 일상의 틈새 속에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다.
지친 하루 끝, 조용히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숨을 고를 때, 낯선 이의 미소에 감사의 마음이 피어날 때, 그분은 이미 그곳에 계신다.
그분의 ‘함께하심’은 기적의 형상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걸음 속에 스며 있는 은총의 숨결이다.
빛은 우리 앞을 비추고, 말씀은 마음의 귀를 열며, 그분의 동행은 우리의 하루를 지탱한다.
세상의 어둠이 깊을수록 그 빛은 더욱 선명해지고, 세상의 소음이 클수록 그분의 음성은 더욱 부드럽게 들린다.
그리고 세상이 멀어진 듯 느껴질수록, 주님은 더욱 가까이 계신다.
오늘 나는 다시 다짐한다.
주님의 빛 속에 걷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언제나 그분과 함께 살리라.
그 길이야말로 세상 끝 날까지 이어지는 믿음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댓글목록0
댓글 포인트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