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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남긴 아름다운 훈장 ― 그리스도의 상처와 어머니의 손

제임스
2025-09-03 19:31 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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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나뭇잎과 닮아 있습니다. 봄 날 새싹으로 돋아나 여름의 햇살을 머금고 푸르름을 자랑하다가, 가을에 이르면 붉고 노란 빛으로 물들어 결국 바람에 실려 땅으로 내려앉습니다. 언뜻 보면 푸른 시절의 잎들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가을이 깊어 낙엽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다른 흔적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벌레 먹은 구멍, 바람에 찢긴 자국, 햇볕에 그을린 색깔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매끈하고 흠 없는 잎보다 상처 입고 구멍 난 잎이 더 정겹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흔적 속에 시간이 깃들고 삶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네 삶도 그렇습니다. 상처 하나 없는 고운 손보다 주름지고 거칠어진 손이 더 아름답습니다. 그 손에는 누군 가를 위해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기꺼이 감내한 희생이 고스란히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한 청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그저 공부에만 몰두했습니다. 성실히 노력한 끝에 이름난 대학을 졸업했고, 마침내 국내 최고의 회사 입사 시험에서 최종 면접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면접 자리에서 사장님이 뜻밖의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오늘은 집에 가서 부모님의 발을 씻어 드리십시오. 그리고 내일 다시 오십시오.”

그날 저녁, 청년은 퇴근 후 돌아온 어머니의 발을 씻기며 눈물이 북받쳤습니다. 시장 바닥을 하루 종일 걸으며 고생하신 발은 퉁퉁 부어 갈라져 있었고, 손 마디 마디에는 세월의 상처가 가득했습니다. 오래된 나무 껍질처럼 거칠고 굳은살이 박힌 손, 군데군데 터진 상처와 굽은 손가락들. 청년은 그 손을 붙잡는 순간 숨이 막혔습니다. 자신이 아무 근심 없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이 손과 발이 감당한 고단함 덕분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다음 날 면접에서 사장님이 물었습니다.

무엇을 느꼈습니까?”

청년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러고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느꼈습니다.”

그 한마디로 청년은 합격의 문을 열었습니다. 어머니의 상처투성이 손과 발은 더 이상 흉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식을 위한 희생의 증거이자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훈장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상처 또한 그러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손과 발, 창에 찔린 옆구리의 상처는 단순한 고통의 흔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의 증거이며, 영원히 빛나는 훈장입니다. 주님은 그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부활 후에도 제자들에게 그 상처를 보여 주시며, 사랑의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확증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 가를 위해 기꺼이 내어 놓은 희생이 때로는 눈물과 고통의 흔적을 남기지만, 그것은 사랑의 증거가 되어 하느님 나라에서 빛나는 훈장이 됩니다. 부모님의 손, 이웃을 위해 내어 놓은 우리의 작은 헌신, 그리고 오늘 우리가 감내한 고단함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이어질 때, 그 상처는 더 이상 슬픔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속에서도 작은 희생과 정성스러운 성실함이 모여 누군 가의 삶에 기쁨을 주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낸다면, 그 자체가 이미 가장 아름다운 훈장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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